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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슈 칼 럼/스 포 츠

한국 스포츠의 기형아 세계 핸드볼 레전드 윤경신

세계를 호령한 핸드볼 선수 윤경신

 

이름 : 윤경신

출생 1973년 7월 7일

신체 203cm , 95kg

포지션 RB(라이트백)

사진출처 , 자료참고 : 네이버

                           

대한민국 핸드볼에서 태어난 기형아

대한민국에서 핸드볼은 비인기 종목이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흥행하며 잠깐 한국 핸드볼계에도 빛은 오는가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었지만 2008 베이징올림픽,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만 잠깐씩 주목 받고 다시 비인기 종목의 현실을 맛 보았다. 2009년 핸드볼의 프로화를 지향하며 실업리그가 출범했지만 티비 중계도 마땅치 않은 것이 지금 우리나라 핸드볼계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20여년 전은 어떠했을까? 지금 대한민국 핸드볼의 현실보다 더 초라하고 차가웠으면 더했지 나은 상황은 아니 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인 윤경신은 그렇게 비참한 대한민국 핸드볼계에서 태어난 ‘기형아’나 마찬가지 였다.

 

 

▲함부르크 소속으로 2년간 뛴 윤경신 사진출처 마이데일리

 

 

핸드볼계의 호나우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존재

대한민국 스포츠에서도 축구의 호나우도 육상의 우사인 볼트처럼 한분야에 독보적인 클래스를 지닌 선수가 있을까? 그가 바로 핸드볼의 윤경신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첫 올림픽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20년동안 국가대표로 지내면서 이번 2012 런던올림픽까지 합하면 5회 올림픽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1996년 애틀란타 대회 제외) 20년 동안 국가대표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수인지 알수 있다.

또 고등학교 1학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독일 전지훈련을 가서 독일의 핸드볼 열기에 매료되어 독일 진출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었는데 경희대를 졸업하는 1995년 헝가리, 스웨덴에서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자신의 목표 였던 독일로 향했고 ‘굼머스바흐’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지역신문은 12월에 데뷔한 윤경신을 한국에서온 크리스마스 선물로 표현하기도 했다.

 

 

▲2m이상에서 내리꽂는 120km의 강슛으로 그는 독일리그를 정복 했다. 사진출처 : 일간스포츠

 

독일에서의 12년은 그를 레전드로 만들었다.

독일 굼머스바흐에서 10년 함부르크에서 2년 총 12시즌을 뛰었던 그는 그중 무려 8시즌에서 득점왕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그중에서도 6시즌은 연속 득점왕이었다. 그런 윤경신의 독보적인 득점왕 행진을 막기위해 타팀에서는 에이스에게 7m 던지기를 몰아주는 일이 발생했고 7시즌 연속 득점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해 득점왕은 7m 페널티 스로우를 121개 기록하며 명예롭지 않은 득점왕에 올랐다.

그리고 윤경신의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00-2001시즌은 윤경신이 무려 324득점을 기록하며 한 시즌 유일한 300득점 이상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뿐만 아니다 윤경신은 현재 분데스리가 개인통산 최다득점자 기록을 가지고 있고 경기당 평균 7점을 넘는 득점력을 가지고 있다. 2001년에는 국제핸드볼연맹에서 최고의 선수로 선택되기도 했다.

이러한 윤경신의 득점력은 독일 1부리그에서 강등경쟁을 하던 굼머스바흐를 10년간 상위권팀으로 이끌었다. 함부르크로 이적한 후에는 2006년 DHB 수퍼컵에서 우승했고 2007년 유럽 핸드볼 연맹 컵위너스컵에서 우승컵을 차지했다.

 

 

핸드볼의 특성상 지역수비를 하지만 윤경신 에게 만큼은 전담수비수가 있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제일 중요한건 제 삶이 잖아요

그게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운동이고

돈은 그 다음에야 생각해볼 문제죠          -윤경신

윤경신은 핸드볼 실력 만큼이나 인격또한 훌륭한 선수이다. 그는 10년동안 굼머스바흐에서 뛰면서 팀이 재정위기로 인해 해체될 위기가 되자 스스로 발품을 팔며 스폰서를 구해 다녔다. 윤경신이 떠나면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후원자들을 설득했고 윤경신 스스로 기아자동차와 독일의 한 자동차 업체의 후원을 따냈다.

또한 독일 진출초기 독일어를 하지 못했던 그는 Nick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Yoon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기위해 한동안 보지 안았던 책을 보았다고 한다. 오전에는 독일어 학원에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하루종일 팀 훈련, 그리고 팀 훈련으로 부족해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웨이트를 다지며 늦은 밤에도 책을 들고 독일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는 굼머스바흐의 대스타였죠.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도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팬들은 쾰른 아레나에 윤선수의 대형 현수막을 설치할 정도였는데 한마디로 제왕이었어요.

 굼머스바흐에 아직 동상을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죠

- 브로슈토크 감독

우리는 윤경신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무래도 ’Seoul'에서 온 사람들은 ‘soul'이 훌륭한 것 같다.

- 굼머스바흐 시민

 

그는 아주 똑똑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경기장 안에서는 완벽한 팀플레이어이며,

그를 중심으로 우리팀은 완전히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에 관해선 그저 칭찬하는 말 밖에 안나온다

-마틴 슈발브 감독

 

참고 - KBS1티비 젊은그대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