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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를 위한 컨텐츠/리뷰

[도서] 환경은 더이상 우리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침묵의 봄

저자
레이첼 카슨 지음
출판사
에코리브르 | 2002-04-10 출간
카테고리
기술/공학
책소개
서구 환경의 역사에서 이 책의 출간은 환경을 이슈로 전폭적인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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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고도의 과학 문명은 더 이상 우리를 한파에 떨지 않게 해주었고, 극심한 노동을 대신해주었습니다. 편리함과 안전의 과학. 

 그런데 여러분은 생각해 보셨나요? 이러한 과학 문명이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독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공상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만약 세상이 기계로 뒤덮히고, 녹음이라고는 찾아 볼 수없게 황폐화 되었다면...

이것이 만약 실제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우리가 무심하게 생각하고 사용하는

제충제와 살충제의 위험성을 실제로 일어난 사례를 읊조리고 있습니다.



 춥고 건조하던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따스한 바람이 몸을 휘감는다. 황폐한 땅에서 나는 앙증맞은 새싹은 하나둘 봄을 알리러 나오고 사랑하는 연인은 함께 나들이를 나갈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봄을 기다린다.



 그런데 어느 날 문뜩 잠에서 일어났는데 매일 지저귀던 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꽃과 나무로 뒤덮였던 아름다운 언덕이 사라져 버려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일까? 그뿐만 아니라 여름을 알리는 싱그러운 매미 소리, 서늘한 가을바람을 타고 휘날리는 코스모스, 차디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생명이 없다면 어떨까? 레이첼 카슨의 침묵 봄은 ‘더는 자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즉, ‘우리에게 더는 자연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라는 상상 해본 적 없는 상황에 대해 지적이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진 출처 : 다음 책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 아마 지구의 나이로는 찰나에 불과한 짧은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지구는 엄청난 속도로 황폐해지고 있다. 우리가 무심결에 사용하는 살충제, 화학물질 때문이다. 살충제, 화학약품은 자연, 인간을 비롯한 생태계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까? 평소에는 접하지도 못했고 느껴보지도 않았던 심각한 사실들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는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살충제와 화학약품은 모두의 신변을 위협하지만, 맛과 냄새는 물론이고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며 느낄 수도 없는 물질이다. 자칫하면 안일해질 수도 있는 문제인데 우리는 그 위협과 공포를 실감하고 직시해야 한다.



 실제로 책에 나오는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살충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성인 남성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벌레를 죽이기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 때문에 성인남성이 죽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고 발병에서 사망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더 놀라웠다. 얼마나 걸렸을까? 단 하루였다. 단 하루면 건장한 남성과 튼튼한 황소가 극심한 통증과 경련 속에 죽는 것이다. 해로운 벌레만 죽이려 한 것인데 어째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그리고 성인 남성과 위협적인 동물마저 무참히 죽어버리는데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여성과 아이들은 얼마나 위험에 노출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고민과 대답은 책을 덮은 후 스스로 되묻게 된다. 살충제의 방아쇠는 해충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우리는 살충제와 화학약품으로 인간에게 ‘해’가 되는 존재들을 살상한다.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곤충부터 하늘을 나는 새까지 대상은 인간을 제외한 해가 되는 모든 생물체이다. 해충의 기준은 누가 정한 것일까. 바로 인간이다. 사람의 환경, 문화, 건강에 피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없애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해충이라 낙인 찍었던 해충들은 정말 해충

일까? 정말 더럽고 나쁜 것일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에 해를 끼친다고 지정된 곤충 중에서는 자연 생태계에선 청소부라 불리며 안 좋은 물질을 먹으며 살아가는 종도 있고 더 나쁜 해충과 대립하고 싸워 상대방을 먹잇감으로 삼는 종도 존재한다. 어찌 보면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다.



 또한, 인간은 생태계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살상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생태계 네트워크는 복잡한 거미줄처럼 그리고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있다. 지렁이를 죽이면 토양이 오염되고 물고기가 병들면 그것을 섭취하는 모든 생물에게 피해가 가듯이 우리가 사는 이 환경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특정 한 종을 죽이면 그 종과 인과관계가 있는 다른 수십 개의 종이 악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인간은 이에 대해 무지하고 심지어 이 복잡한 생물 간의 관계를 조사하는 연구기관에 대해 터무니없이 적은 지원만 할 뿐이다. 정말 현재 과학기술은 자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산업화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은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산업화가 시작된 서양을 중심으로 자연은 인간 밑에 존재하며 정복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와는 다르게 동양은 예전부터 자연과 동화되는 물아일체, 무위자연을 계승하고 배웠으나 21세기의 동양은 그렇지 않다. 서양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개발의 수단으로 보고 훼손한다. 눈앞의 이익만 보고 큰 그림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산업화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동력의 혁명으로 크게 꽃피우게 되었는데 자본가가 권력을 지니게 된 것도 이 시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생태계의 네트워크를 자세히 알고 조사해야 하는 과학자들이 오히려 생태계를 망가트리는 제초회사의 처지를 대변하게 되어 버린 것도 이러한 자금력을 지니고 있는 자본가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있다.



 많은 농부와 국민들이 무지하게 살충제를 남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실을 말하고 가르쳐주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뿌리는 살충제와 화학물질이 해로운 해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들이 아끼는 애완동물, 자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는 행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을 크게 뒤흔든 사건이 발생하였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과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사고’이다.



 첫 번째 사건은 가습기 살균제에 첨가된 화학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될 때 독성이 되어 영유아, 임신부 등 78명이 사망하거나 폐 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그리고 두 번째 사고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여 현재 수십만 톤의 방사능 물질이 태평양으로 유입되고 있는 사건이다.



 두 경우 모두 우리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고 대중들은 향후의 안전과 먹거리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즐겨 먹는 과일이나 음식에 존재하는 농약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사실 대부분 식료품이 농약을 사용하는데 이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은 씻거나 조리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몸에 장기간 축적되면서 큰 병으로 발생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인지하지 못한 위험은 가장 가까이 있다.



사진 출처 : 조관현의 생물세계 자료실


 살충제 사용을 옹호하는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우리에게 해로운 해충은 자신들이 발명한 살충제로 박멸하고 조절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종 중에서 단 한 중만을 멸종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작든지 크든지 모든 종과 생태계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과학자들과 정부 관리자의 안일한 화학물질 오용과 남용은 생태계를 망가뜨리고 강, 바다, 토지, 대기, 야생 동·식물 그리고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다준다.



 온갖 해로운 약품으로 망가진 마을을 본 여성이 기고한 글이 있다.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주는 일은 불가능한가요?”


 -밀워키에 사는 한 여성이 보낸 글 중에서-



 푸르고 싱그러운 초목은 더는 안전하지 않다. 반짝이는 잎 뒤에 보이지 않는 화학물질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숲이 조용하다면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생명이 없는 자연은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그림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은 후에 환경보호론자 혹은 비관론자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무참히 학살당하는 자연을 생각한다면 환경 보호를 부르짖을 것이고 ‘침묵의 봄’이 출간된 것이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는 것을 안다면 걷잡을 수 없이 황폐되고 고착된 자연을 향해 씁쓸히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레이첼 카슨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는 말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